경제논평

근자에 한국은행이 이렇게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없었다. 지난 달엔 금리인하를 안 한다고 비판을 받더니 이번 달엔 금리를 내렸는데도 말이 많다. 안 내린다 해놓고 내렸다는 것이다. 한은 입장에서는 억울한 것이 많겠지만 화를 자초한 측면도 크다. 우선 지난 달 금리 동결의 경우 비판론이 무조건 옳다 보기 어렵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여건을 고려할 때 금리 인하로 당장 소비나 투자가 살아나길 기대하긴 어렵다. 일본의 엔저 공세로 수출기업들이 고전한다 하지만 금리 인하가 얼마나 원화 값 하락으로 이어질지, 그런 정책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논쟁 거리다. 정부는 대규모 부동산 대책과 추경 편성으로 경기부양에 나서는데 한은은 뭘 하고 있냐는 말도 교과서 논리에 불과하다. 재정정책에 비해 통화정책은 시차가 상대적으로 짧고, 가격 유인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경제주체의 반응을 감안해 타이밍을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부의 재정확대와 한은의 금리인하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의 정책조합이 아닐 수 있다.

금리는 그 어느 거시정책보다 시장선도적 성격을 지닌다. 단순한 금융비용 차원을 넘어 경제정책의 흐름을 가늠하는 수단이다. 그 만큼 정책 결정과 평가가 쉽지 않다. 금리가 내리면 기존 부채나 신규 차입 비용은 줄겠지만 이것이 소비나 투자에 어떤 효과를 미칠지는 불확실하다. 부채가 많아 소비를 꺼리고 있는 가계가 금리 조금 내렸다고 행동을 바꾸진 않는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경제가 살아나고 소득이 늘 것이라 믿는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설비투자나 건설투자 부진은 수출수요나 주택경기 같은 구조적 요인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금리인하가 효과를 내려면 다른 정책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의 금리정책을 교과서 논리나 외국 사례에 근거해 평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금리인하가 사후적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사전적 유인 효과로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중앙은행이 유능해야 한다. 시장을 리드할 능력도 없으면서 찔끔거리며 금리인하를 반복하면 아까운 정책자원만 낭비하게 될 수 있다. 자신 없으면 차라리 기다렸다 정말 필요할 때 확 내리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 총재는 정제된 발언을 통해 시장을 선도해 나갈 필요가 있는데, 그러려면 시장의 신뢰가 필수 조건이다.

만일 한은이 지난 몇 달 좀더 세련된 논리와 충분한 자료로 금리동결을 설명하면서 경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금리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시그널을 함께 보냈다면 지금 같은 신뢰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은은 해석이 다양할 수 있는 경제지표에 의존해 ‘경기가 나아지고 있으므로 금리를 못 내린다’는 식의 단순 논리만 되풀이했다. 본의는 그게 아니었더라도 시장이 그렇게 해석한 것은 사실이다.

경기진단은 불확실한 게임이다. 한은이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 해외시장 침체에 따른 수출 부진, 가계부채 압박으로 인한 소비위축, 주택경기 실종으로 이한 건설투자 하강은 구조적 성격의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경기의 장기침체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필요하다면 충분히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식의 자신감을 보였다면 중앙은행으로서의 권위가 훨씬 돋보였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한은 총재는 이번 달 금리가 동결될 것이라는 뉘앙스의 구두 발언을 몇 차례 했고, 시장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정작 결과는 반대였고, 한은에 대한 신뢰는 한 단계 더 추락했다. 금리인하를 주장했던 측은 한은이 항복했다 여길 것이고, 중앙은행 총재의 구두발언을 정책수단의 일부로 생각했던 전문가들은 허탈해 할 것이다. 한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금리인하가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번 금리 논쟁을 계기로 한국은행의 위상이 반전하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가 모여있는 기관의 정책능력이 기대 이하라면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단순한 리더십 문제인지 아니면 경직된 조직 문화나 정부 간섭 탓인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알 것이다 (13.05.14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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